'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는 이 물곰을 지구 최강의 생물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귀여워서 애완동물로 키우면 인기가 있을 것이라고도 하였죠. 하지만 물곰은... 매우 작습니다!
어쨌든 눈으로 겨우 보일까말까한 이 물곰이, 5억년 전에는 지금보다 1000배나 더 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렇게 물곰의 새로운 면모가 밝혀졌는데요.
오늘은 물곰의 정체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 또 5억년 전 물곰의 모습에 대해서도 살펴보겠습니다^^
1. 물곰(완보동물)이란?
완보동물(緩步動物)은 곰벌레나 물곰(water bear)이라고도 불립니다.
동물의 한 문으로, 절지동물과 연관이 있습니다.
1777년, 이탈리아의 생물학자 라차노 스팔란차니는 "느리게 걷는 것들" 이라는 뜻의 Tardigrada 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완보동물이 바로 이 느리게 걷는 동물이라는 뜻이지요.
다 자란 성체는 보통 0.5mm이고, 8개의 발이 있어 곰처럼 걷는 모습으로 인해 물곰이라고 지었습니다. 짧고 통통한 4쌍의 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각의 끝은 4~8개의 발톱, 또는 빨판이 있습니다.
완보동물은 일반적으로 이끼와 지의류에 널리 퍼져있습니다. 그들은 식물세포, 조류, 작은 무척추동물을 먹습니다.
현재까지 약 1,000여 종이 발견되었습니다.
히말라야 산맥 정상에서 깊은 심해까지, 극 지방에서 적도까지 지구 전체에 걸쳐 퍼져 있습니다.
완보동물의 가장 큰 특성은 엄청난 생명력입니다.
수분 공급 없이 10년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진공상태에서도 살 수 있고요. 또 섭씨 151도로 끓여도 살고, -273도에서도 견딥니다.
절대영도에서도 견디는 셈이지요.
평균 수명은 3개월에서 2년 반입니다. 그런데 신진대사를 멈추고 휴면 상태로 120년간 지낸 물곰이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5700 그레이(gray)의 X선도 견딜 수도 있습니다.
2. 상세
완보동물의 일부 종은 안점, 즉 원시적인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광학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머리에 보통 눈이 있을 만한 위치에 두 개의 검은 점이 박힌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투명하지만 도롱뇽같은 모습이 귀엽습니다. 물론 원시적인 눈이라 빛의 유무를 가리는 정도에 그칩니다.
조상이 곤충 쪽과 일부 연관되어 있어서 그런지, 알을 낳아 번식합니다. 일반적인 상식과 다르게 갓 태어난 새끼도 성체 완보동물과 세포수는 똑같습니다. 그런데 자라며 세포의 크기만 커진다고 합니다.
몸 외곽이 단단한 큐티클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갑각류마냥 몸이 커져도 큐티클은 자라지 않아서 허물벗기를 합니다. 일부 종은 이런 점을 살려서 아예 큐티클 허물을 벗으며 거기에 알을 낳기도 합니다.
허물이 완전히 벗겨지면 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는 것입니다.
곰벌레의 유전자는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하는데요. 신체부위의 위치와 존재유무를 담당하는 유전자인 혹스 유전자(Hox Gene)가 곤충과 그것의 공통조상과 비교했을 때 상당수가 누락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단순히 다리 2개가 빠진 것도 아닌, 무려 내장과 몸을 담당하는 유전자가 빠져있습니다. 따라서 곤충의 시선에서 보면 몸이 없는 잘린 머리에 발과 손이 자라서 생활하는 기괴한 꼴이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ux1j1ccsgg
3. 생존성
완보동물이 주목을 받고 있는 점 중 하나는, 바로 엄청난 생존능력 때문입니다.
수명은 완보동물 내에서도 종에 따라 다릅니다. 보통 3달~2년 정도 사는데요. 다만 환경이 안 좋을 때에는 일종의 휴면상태 혹은 가사상태로 버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신진대사율을 1만분의 1까지 저하시켜 체내 수분량을 평소의 1%까지 줄일 수 있는데요.
이를 통해 극도의 건조상태에서도 오랜 시간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휴면상태로부터 소생한 최장기간은 공식적으로는 10여 년 가까이 됩니다. 그러나 냉동상태나 무산소 상태라면 보존기간은 증가할 수 있습니다.
이런 휴면 상태로 접어드는 특성을 이용해 다른 생물이라면 대부분 죽게 될 상황에서도 버티다가, 환경이 다시 좋아지면 생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완보동물은 아래와 같은 조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 저온
절대영도에서 겨우 1도 높은 −272℃에서 생존한 사례가 있습니다. 참고로 우주에서 가장 춥다는 부메랑 성운의 온도와 일치하는데요.
천체 중에는 최저온도조차 이보다 낮거나 비슷한 사례가 없습니다. 물론 불과 몇분 정도 생존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같은 환경에서 인간은 바로 얼어버리겠죠.
30년 동안 영하 20°C에서 냉동되어 있다가 다시 부활하는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2) 고온
151℃ 이상의 온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쪽도 불과 몇 분 정도일 뿐입니다. 심지어 곰벌레는 불속에서 고온으로 죽을지언정 곰벌레의 큐티클 갑옷은 불에 타지 않는다고 합니다.
3) 고압
6000기압을 견딘 사례가 있습니다. 이는 마라아나 해구 바닥의 수압의 6배를 넘는 압력입니다.
다만 자연 상태에서 버틴 건 아니고,미리 실험 전에 탈수시켜 휴면상태로 만들어놓고 압력을 가한 것입니다. 20분간 버텼다고 합니다.
4) 저압
진공상태에서도 오랜 기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우주 환경에서도 곰벌레가 견딜 수 있을지를 확인하기 위해, 2007년 9월 유럽우주기관(ESA)에서 쏘아 올린 우주 실험위성 FOTON-M3에는 건조된 곰벌레를 우주공간에 직접 노출시켜 보는 실험이 진행되었습니다.
1차 실험에서는 우주 방사선을 쬐였고 2차 실험에서는 태양광에 노출시켰습니다.
이 와중에 곰벌레는 무려 10일 동안 우주의 진공에 노출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구로 귀환한 곰벌레 중 우주 방사선만 쬐였던 곰벌레는 거의 100% 생존했을 뿐 아니라 번식까지 했습니다. 태양광에 노출된 곰벌레는 상당수 죽었지만 역시 살아남은 곰벌레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살아남은 곰벌레들을 조사해보니 이들은 태양광에 손상된 DNA를 스스로 수리하여 복원했습니다.
5) 탈수
휴면 상태에서 몇 년 정도는 확실히 버틸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10년 가까이 버티기도 합니다. 극한의 탈수 상황이 오면 완보동물들은 공모양으로 몸을 움크립니다.
그리고 몸 내부의 수분을 설탕과 비슷한 단단한 물질로 대체하여 세포들을 보호합니다.
또한 밀라노의 자연사 박물관에서 120년 전에 만든 표본속의 곰벌레가 표본을 연구하기 위해 살펴보는 도중 부활한 사례가 있습니다.
다른 사례가 없는 데다가 겨우 다리 한짝 움직였다는 수준이라 일반적으로는 살아난 걸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6) 방사능
사람 치사량의 1000배에 해당하는 5000그레이(Gy)의 감마선에 48시간이나 노출되어도 죽지 않습니다. 다만 수명이 크게 줄고 생식능력을 잃어버리기는 합니다.
7) 독성물질
알코올 등 유기용매나 각종 화학물질에 강한 내성을 지닌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8) 저산소
산소가 부족한 상황에서 자신의 신진대사를 최대 0.01%까지 낮출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사상태에 빠져있다가 환경이 좋아지면 부활헙니다.
연구자들이 현미경 관측을 위해 슬라이드를 떴다가 내부에 공기가 다 빠져나가면 곰벌레들이 죽은것마냥 떠다니는데요.
이때 슬라이드를 살짝 열어서 입으로 공기를 불어넣어주면 다시 살아나서 활동합니다.
이렇게 높은 생존력을 가지고 있어서 무식한 포식자일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는 초식동물에 가까운 입장입니다.
적대적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날 뿐, 천적에 대한 대비는 거의 없습니다.
복잡한 구조를 가진 다세포동물이지만, 크기가 너무 작고 미생물 세계에서는 비효율적인 방식인 다리로 활동하는 탓에 매우 느립니다.
그래서 단세포인 딜레투스나 아메바같이 공격적이고 커다란 미생물계 최상위 포식자에게는 만만한 피식동물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히드라를 이끼 등으로 착각하고 촉수에 붙어서 타고 다니다가 독에 맞고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완보동물의 큐티클 갑옷은 수백도의 고열은 버티는데도, 이렇게 포식자의 소화액에는 버티지 못하는 것입니다.
4. 5억년 전의 완보동물
국내 연구진이 '지구 최강의 생존자'라는 별명을 가진 완보동물이 약 5억년 전에는 지금보다 1000배 가량 몸집이 더 컸을 것이란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김지훈 극지연구소 연구원이 이끄는 국제 연구진은 "5억년전 화석을 연구해 물곰으로 알려진 '완보(緩步)동물'의 조상과 진화 과정을 찾아냈다"고 9일 밝혔습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지난달 3일 게재됐습니다.
물곰의 생존력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는데요. 그러나 물곰의 기원이나 진화 과정에 대해서는 거의 연구된 바가 없었습니다.
김 연구원은 미국 중국 등 국제연구진과 함께 현생 완보동물 40여 종과 5억년 전 엽족동물들의 화석 형태를 비교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연구진은 중간 머리 부분에 존재하는 한 쌍의 기관, 두 종류의 몸통 다리 등 공통 형질을 가진 엽족동물 '루올리샤니드'가 완보동물의 조상임을 발견했습니다.
엽족동물은 마디가 없는 다리를 지는 벌레 형태의 동물입니다. 지금은 화석으로밖에 볼 수 없죠.
화석에서 확인한 루올리샤니드의 크기는 2~10cm였습니다.
그런데 완보동물은 일반적으로 다 자라도 1mm가 안 됩니다. 그러니 루올리샤니드가 완보동물보다 최대 1000배 큰 셈입니다. 루올리샤니드는 완보동물과 달리 긴 앞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다리에 난 털로 작은 먹이를 모으거나 걸러 먹었을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연구진은 완보동물이 5억 년 전 형태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하기까지 특정 유전자의 소실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고생물학과 현생 생물학을 융합해 완보동물의 조상을 밝힌 희귀한 연구입니다. 극지연구소는 "두 학문을 전공한 김 연구원의 독특한 이력 덕분에 수억 년 전 화석동물과 현생 동물을 비교하며 진화 과정 추적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연구에 교신저자로 참여한 박태윤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극지는 높은 화석 연구 잠재력을 보유한 매력적인 지역으로, 고생대 생물의 흔적이 잘 남아있는 북그린란드 시리우스 파셋 등에서 이미 활발히 연구가 진행 중이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동물 기원과 지구의 역사를 밝혀내기 위한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라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