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학명이라는 것을 들어보셨지요. 학명이라는 것은 지구상 수많은 동식물들에게 이름을 붙이기 위해 린네라는 식물학자가 고안한 체계입니다.
보통 라틴어로 '속명+종명'을 적어서 헷갈리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데요.
이 학명은 최초 발견자나 아니면 발견한 장소 등을 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재미있는 학명을 가지고 있는 동식물들도 많이 있는데요. 그중 일부를 오늘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사우론을 닮은 나비에 붙은 '암흑군주 사우론'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지켜보는 눈. 바로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암흑의 군주 사우론(Sauron)의 이름을 딴 나비가 있다고 합니다.
영국 자연사박물관은 현지시간 7일, "남미에서 처음 발견한 나비가 날개 가장자리 둥근 무늬가 마치 영화에서 세상을 노려보던 눈을 연상시켜 속명(屬名)을 '사우로나(Saurona)'로 붙였다"고 밝혔습니다.
오! 저 위의 나비의 사진을 보니 정말 눈처럼 생겼네요. 적절한 명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요새 영화 등장인물이나 실제 영화배우, 심지어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딴 동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는 장난이 아니라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과학 연구와 생태계 보전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일부러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이름을 새로 발견한 생물 종에 붙이고 있습니다.
사우론은 J. R. R.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암흑의 군주입니다. 절대 반지의 힘으로 지은 바랏두르의 탑에서 붉은 눈을 부릅뜨고 세상을 감시하고 있는 존재이죠.
자연사박물관의 블랑카 우에르타스 박사가 바로 이 주항색 날개 가장자리에 검은 테두리 안에 흰 점이 있는 눈같은 모습을 가진 나비를 발견하고 사우론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바로 '사우로나 트리앵굴라(Saurona triangula)'와 '사우로나 아우리게라(Saurona aurigera)'입니다.
과학자들이 생물에 붙이는 이름인 학명은 가장 낮은 분류 체계인 종명을 뒤에 두고, 그 보다 한 단계 높은 속명을 앞에 붙입니다.
사우로나는 독일 알렉산더 쾨니히 동물연구박물관의 마리앤 에스펠란드 박사가 이끈 공동 연구진이 지난달 국제학술지 '나비 분류학'에 발표한 신종 나비 속 중 하나입니다. 블랑카 박사는 "특이한 이름을 붙이면 아직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나비들에게도 관심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매우 비슷하게 생긴 종들 사이에서도 칙칙함 속에 가려졌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사우론의 이름을 딴 동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랍니다. 이미 소똥구리나 개구리, 공룡 등이 사우론의 이름을 얻기는 했다네요. 일례료 모로코에서 발견된 육식동물 두개골에 '사우로니옵스 파키톨루스(Sauroniops pachytholus)'란 학명을 붙였습니다. 속명은 그리스어로 '사우론의 눈'이라는 뜻이라네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백발의 노마법사 간달프의 이름을 딴 포유류 화석도 있고요. 게와 나방, 딱정벌레 중에서도 그의 이름을 딴 것이 있답니다.
영화에서 원래 호빗이었다가 괴물이 된 골룸은 갯민숭달팽이 속과 기생말벌, 물고기 이름에도 들어 있습니다.
DNA 연구 통해 새로운 나비 속 발견
나비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는 곤충 종이지만, 겉모습이 독특하거나 화려한 종에 연구가 집중됩니다.
나비는 날개 색이나 무늬로 종을 구분하나, 서로 겹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블랑카 박사는 "이번에 연구한 나비들은 남미 열대지역에 널리 분포하지만, 생김새가 비슷해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 400여종의 나비에 대해 DNA 분석을 통해 새로 분류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진은 이번에 사우로나를 포함해 무려 9개나 되는 새로운 속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역시 블랑카 박사가 명명한 '아르헨테리아(Argenteria)' 속도 있습니다. 아르헨테리아는 은광(銀鑛)이라는 뜻으로, 날개에 은빛 비늘이 있어 이런 이름을 붙였다네요.. 현재 이 속에는 6종이 있지만, 더 많은 종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이번 연구진은 영화 캐릭터 이름을 원용해서, 나비 연구에 좀더 큰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블랑카 박사는
"이미 멸종 위기에 처한 나비들도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종이 발견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우로나 속의 나비도 지금까지 두 종만 발견되었지만, 미발견 종도 많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이렇게 과학자들은 소설이나 영화 등에 나오는 가상의 인물을 새로 발견된 동물에 학명으로 붙여 대중의 관심을 환기합니다.
2019년에는 호주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새로 발견된 딱정벌레 3종에 포켓몬스터의 나오는 몬스터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또 우리에게 친숙한 배우나 대통령의 이름을 딴 동물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카메룬에서 발견한 새로운 식물 종에 '우바리옵시스 디캐프리오(Uvariopsis dicaprio)'란 학명(學名)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종명에 디캐프리오는 바로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이죠!
줄기에 황록색 꽃이 피는 이 상록수는 카메룬의 이보 숲에서 처음 발견되었다는데요. 이 숲에는 고릴라나 침팬지와 같은 다양한 멸종위기 동물과 희귀 식물들이 사는 것으로 유명한 원시림입니다. 이 학명의 명명자는 "디캐프리오가 이보 숲의 벌목을 멈추게 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다"고 명명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카메룬 정부가 2020년 이보 숲의 벌목을 허가하자 전 세계 과학자들이 이 허가를 취소해달라고 청원했다는데요. 디캐프리오가 직접 나서서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과학자의 청원내용을 올리자, 팔로워 수백만 명이 벌목 반대 캠페인에 동참하고, 카메룬 정부가 이후 벌목 허가를 취소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배우 디캐프리오 자신이 벌써 환경보호에 진심이고, 그래서 이렇게 디캐프리오의 이름은 학명으로도 많이 쓰인다고 합니다.
2018년 필리핀과 네덜란드 과학자들은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에서 처음 발견한 수생 곤충에 '그루벨리누스 리어나도디캐프리오이(Grouvellinus leonardodicaprioi)'라는 학명을 붙였습니다. 시냇물에 사는 이 곤충은 몸길이가 채 3㎜도 안 됩니다. 연구진은 "아무리 작은 곤충이라도 소중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디캐프리오의 이름을 땄다"고 밝혔습니다.
멸종이란 이름을 가진 꽃
심지어 대통령 이름도 학명에 등장합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임기 중 환경보호에 이바지한 공로 등으로 무려 9종에 이름이 들어갔습니다. 대통령으로는 제 26대시어도어 루스벨트(7종)을 넘는 역대 1위 기록입니다.
이를테면 2016년 하와이 산호초에서 새로 발견된 물고기는 해양보호구역을 확장한 공로를 기리기 위해 '토사노이데스 오바마((Tosanoides obama)'로 명명되었습니다.
2011년 아프리카 콩고에서 발견된 신종 물고기엔 '텔레오그라마 오바마오룸(Teleogramma obamaorum)'이란 이름이 붙었는데요. 이도 오바마의 공로를 기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배우나 영화 등장인물 대신, 참혹한 학명을 지닌 식물도 있습니다.
바로 에콰도르의 화려한 자생식물인 '가스테란투스 익스팅크투스(Gasteranthus extinctus)'입니다. 뒤쪽 종명이 멸종(extinct)이란 단어에서 왔습니다.
이 식물 익스팅크투스는 1981년 처음 채집되었는데요. 과학자들이 2000년에 학명을 붙일 때 이미 서식지가 완전히 파괴된 상태였습니다.
에콰도르 정부가 숲을 대대적으로 개간해 농지로 만들면서 서부 열대우림이 97%나 파괴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미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사라진 이 꽃을 보고 후대에 교훈을 주기 위해 '멸종'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다행히도, 40년 전에 이미 멸종했다고 생각한 이 꽃이 다시 발견되었습니다.
미국 시카고 필드 자연사박물관의 나이절 피트먼 박사 연구진은 지난해 4월 국제 학술지 '파이토키스(PhytoKeys)'에 "에콰도르 서부 센티넬라 능선의 폭포 근처에서 멸종했다고 생각했던 가스테란투스 익스팅크투스가 여전히 자연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생명체에 적절한 이름을 하나 붙여주는 것만으로도 생명체의 운명이 달라지기도 하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