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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

엄지처럼 진화한 판다의 손목뼈... 그런데 왜 안 길어졌나

by 작가석아산 2023. 4. 22.

대나무를 쥔 판다의 앞발을 보면 다섯 개의 발가락과 마주 보는 자리에 종자골이 변형된 '가짜 엄지'가 움켜쥐는 노릇을 한다. 샤론 피시 제공.
대나무를 쥔 판다의 앞발을 보면 다섯 개의 발가락과 마주 보는 자리에 종자골이 변형된 '가짜 엄지'가 움켜쥐는 노릇을 한다. 샤론 피시 제공.

600만 년 전 지금 판다보다 손목뼈 더 긴 조상 판다

대나무 먹는 데 편리하지만 더 길게 진화하지는 않았다

네발로 걸을 때 더 길면 체중 지탱 곤란

 

자이언트판다의 조상은 사실 다른 동물이나 열매 등을 먹던 잡식동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판다는 오로지 대나무만 먹고 살죠. 이런 대전환의 비결은 바로 가짜 엄지입니다. 

신기하게도 손목뼈의 일부가 마치 엄지손가락처럼 발달하여 대나무를 단단히 움켜쥘 수 있습니다. 이렇게 대나무를 마치 손에 쥔 것처럼 들고 으깨어 먹죠.

 

이 손목뼈의 진화는 100년 전 이상부터 알려진 적응 진화의 유명한 사례입니다만, 어떻게 손목뼈가 가짜 엄지로 진화하게 됐는지는 알기 어려웠죠.

왜냐하면 판다의 화석 기록이 매우 드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왕 샤오밍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자연사박물관 학예사는 중국 윈난 성 자오퉁시의 화석 산지에서 발굴한 600만∼700만년 전 판다 조상의 화석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화석을 열심히 분석하여 비밀의 일부를 밝혀냈다고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발표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인 우리는 다른 동물과 달리 엄지가 나머지 손가락을 마주보고 있죠.

그래서 꼭 움켜쥐는 동작을 할 수 있어, 정교한 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판다는 가짜 엄지를 이용해서 사람처럼까지 능숙하지는 않으나 대나무를 움켜쥐고 미끄러운 표면의 대나무 껍질을 벗겨내고 으깨어 먹기까지 합니다.

 

판다의 '가짜 엄지'(옅은 색) 기능. 연결된 근육의 힘으로 대나무를 단단히 움켜쥐기도 하고 이동할 때 평평한 밑바닥으로 체중을 지탱하기도 한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자연사박물관 제공.
판다의 '가짜 엄지'(옅은 색) 기능. 연결된 근육의 힘으로 대나무를 단단히 움켜쥐기도 하고 이동할 때 평평한 밑바닥으로 체중을 지탱하기도 한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자연사박물관 제공.

가짜 엄지는 손목뼈의 일부인 중지골이 커져서 다섯 손가락의 바깥쪽으로 삐죽 튀어나온 것입니다.

저 위의 사진을 보시면, 마치 판다의 손가락이 여섯 개인 것처럼 보입니다만, 가장 짧은 것은 손목 뼈가 바뀐 것입니다. 진짜 신기하네요~

 

왕 박사는 "깊은 대나무숲에서 판다는 고기와 베리의 잡식식단을 아열대 숲에 양은 풍부하지만 영양가는 빈약한 대나무만 조용히 먹는 것으로 바꾸었다"며 "대나무를 씹을 만한 크기로 으깨기 위해 단단히 붙드는 것은 엄청난 양의 대나무를 먹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적응이었을 것"이라고 박물관 보도자료에서 말했습니다.

 

정말로 먹이가 한정되기 시작하면서 이런 적응이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저명한 고생물학자였던 스티븐 제이 굴드(1941∼2002)는 '판다의 엄지'라는 책에서 생물 진화가 새로운 것을 만들기 보다 기존의 것을 땜질하는 식으로 진화하는 대표적인 예로 판다의 가짜 엄지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엄지 노릇을 하는 뼈는 작고 넓적하고 거의 튀어나오지 않은 빈약한 형태입니다.

그러니까, 진화에 도움이 된다면 더 길어도 될 텐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에 발견된 600만년 전의 판다 조상의 화석에서는, 이 가짜 엄지가 현생 판다보다 더 길었습니다.

 

대나무를 잘 다루는 게 목적이라면 왜 판다의 가짜 엄지는 더 커지지 않은 걸까요.

연구자들의 결론은, 손목뼈가 변형된 이 제 여섯번째 가짜 엄지는 단지 대나무를 움켜쥐는 것만이 아니라, 걸을 때에 몸무게를 지탱하는 구실도 했다는 것입니다.

 

왕 박사는 "판다는 가짜 엄지로 먹고 걷는 이중의 기능을 수행했다"며 "이것이 엄지가 커지는 것을 제한했다"고 말했습니다. 너무 커지면 걷기에 방해가 됐다는 것이죠.

화석을 기초로 복원한 600만년 전 판다의 조상인 아일루라르크토스 상상도. 모리시오 안톤 제공.
화석을 기초로 복원한 600만년 전 판다의 조상인 아일루라르크토스 상상도. 모리시오 안톤 제공.

현생 판다는 그 조상에 비해서 가짜 엄지가 커지진 않았지만 끝이 구부러져서 대나무를 꽉 움켜쥐기 편하고, 게다가 밑부분이 평평해서 바닥을 딛는 것도 편합니다. 

 

공동연구자인 데니스 수 미국 애리조나대 교수는 "500만∼600만년이란 시간은 판다가 더 긴 가짜 엄지를 개발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었을 것"이라면서도 "돌아다니며 체중을 지탱해야 할 필요가 진화적 압력으로 작용해 대나무를 먹는 데 충분하지만 보행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크기에 머무르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저 판다의 가짜 엄지는 더 길어서 대나무를 잘 먹을 것인가, 아니면 더 짧아져서 몸무게를 지탱할 것인가... 의 효율성 경쟁에서 절묘하게 찾은 균형책인 것이죠! 이게 진화의 신비입니다~

굴드는 '판다의 엄지'에서 판다가 손목뼈를 재활용해 가짜 엄지를 만든 것을 두고 "조금 꼴사납긴 하지만, 그래도 훌륭하게 작동되는 해결책이었다"고 했습니다. 연구자들은 "가짜 엄지가 체중을 지탱하는 구실도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굴드도 기뻐했을 것"이라고 논문에 적었습니다.

 

판다는 잡식에서 고섬유질 대나무로 먹이를 바꾸었지만 아직도 육식동물의 짦은 소화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나무의 20%만 소화하지요. 그래서 하루 15시간 동안 무려 45킬로그램의 대나무를 먹습니다.

다행히도 대나무는 아열대 숲에서 아주 빠르게 자라고, 연중 풍부하며, 또 이걸 먹는 동물도 거의 없습니다.

 

판다는... 정말 교묘한 틈새 시장을 노린 진화의 승리자인 것인데요... 그러나 인간에 의한 환경 파괴는 당해낼 재간이 없어, 지금은 거의 멸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