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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

다른 물고기 정자 가로채 번식하는 신비한 물고기

by 석아산 2023. 5. 2.

처녀생식을 통해 유전적으로 동일한 클론을 양산하는 기벨리오 붕어. / 사진=Fabian Oswald
처녀생식을 통해 유전적으로 동일한 클론을 양산하는 기벨리오 붕어. / 사진=Fabian Oswald

우와... 물고기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되네요. 

물고기 중에는 성이 변화하는 것도 있다고 하는데요.

감성돔 같은 물고기는 생식기간이 되면 암컷으로 변화한다고 합니다. 짱 신기하네요~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물고기의 정자를 가로채 번식하는 신비한 처녀생식 물고기를 소개해 드릴건데요.

이런 걸 보면 진짜 아직 우리가 밝히지 못한 자연의 신비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습니다. 

본래 유성생식을 하는 동물... 이런 동물이 수정 없이 번식하는 처녀생식(parthenogenesis)은 양서류나 어류에서는 생각보다 흔한 생식 방법입니다.

 

수컷 없이 암컷이 혼자 알을 낳고 후손을 퍼뜨린다면... 만약 짝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후손을 남길 수 있어, 고립된 환경에서 아주 유리해질 수 있죠.

유럽의 외래 침입종 물고기인 기벨리오 붕어(학명 Carassius gibelio) 역시 그러한 사례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외부에서 유입된 물고기들이 대개 짝을 구할 수 없어 후손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과 달리 기벨리오 붕어는 처녀 생식을 통해 수많은 후손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천적이 될 만한 큰 동물들이 별로 없는 환경에서, 기벨리오 붕어는 빠르게 생태계를 장악해 나갔습니다. 모든 개체가 암컷이기 때문에 경쟁자보다 두 배나 많은 알을 낳을 수 있다는 것도 굉장한 장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 연구팀은 기벨리오 붕어의 유전자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이 물고기의 별난 성공 비결을 알 수 있었는데요.

기벨리오 붕어의 가장 기이한 특징은 처녀 생식에 정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벨리오 붕어 암컷은 다른 근연종의 물고기가 정자를 물속에 배출해 수정할 때, 슬그머니 자기 알도 같이 수정시킵니다.

 

정자가 기벨리오 붕어 알에 들어가면 자극을 받아 세포분열을 시작하지만, 다른 종의 유전자는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결국 낳는 것은 엄마와 유전적으로 동일한 클론입니다.

그러니까, 이 기벨리오 붕어는 다른 종의 정자를 그냥 일회용 열쇠처럼 쓰고 버리는 역할로 훔치는 것이죠. 진짜 신기하네요!

 

연구팀은 기벨리오 붕어의 완전체 염색체를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정자 의존 처녀 생식보다 더욱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대부분의 척추동물은 한 쌍의 염색체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벨리오 붕어는 3쌍의 염색체를 지니고 있었죠. 덕분에 염색체의 숫자가 사람의 3배가 넘는 150개에 달합니다.

 

연구팀은 이 염색체 가운데 4개는 사실 다른 근연종에서 유래했다는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근연종과 이종 교배를 하는 과정에서 복잡하게 염색체가 섞이고 증가한 것이죠. 

그런데 보통 이렇게 염색체가 증가하면 세포 분열 때마다 복제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많아져서 생존에 불리합니다. 하지만 기벨리오 붕어는 6개의 염색체 세트를 가지고 있어서 처녀 생식으로 염색체가 반으로 줄어도 충분한 유전자를 보유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벨리오 붕어는 태생적으로 처녀 생식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처녀 생식은 항상 유리한 것만은 아닙니다.

유전적으로 모두 동일한 클론으로 이뤄진 집단은 환경 변화나 전염병에 매우 취약합니다. 하지만 당장에는 천적이 없고 경쟁자보다 두 배 많은 알을 낳을 수 있다는 장점이 더욱 크게 작용합니다.

 

그래서 유럽 곳곳에서 고유종을 밀어내고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죠. 과학자들은 이 기이한 물고기의 진화 과정과 구제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이렇게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